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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조선에는 탱크가 있었다.초고대 문명 2019. 8. 6. 13:58반응형
한성을 점령한 일본군은 기세를 몰아 행주산성을 점령하려고 하였는데, 행주산성에는 권율 장군과 조선군
3천여명이 주둔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군은 3만여명으로 10배나 많은 인원을 동원했다.
행주산성 대첩도 권율 장군과 조선의 3천여 병사들은 이미 일본군의 공격을 예상하고 성내에 투석용 돌과 화살, 화공작전에
대비한 방화용수들을 충분히 준비해 놓고 있었다.
일본군과 조선군 대치도 성내에는 긴장감이 감돌았고 드디어 일본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치열한 공방은 7차에 걸친 공격과 수비로
이어졌고, 결국 권율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탱크의 원조 망암 변이중의 화차 행주대첩으로 승기를 잡은 조선군은 기세를 몰아 한성을 수복하는 계기를 만들게 된다. 그런데 행주산성 전투
에서 우리가 주목할 만한 무기가 있다. 그것은 변이중 화차이다.
변이중 화차의 화력 시범 이 변이중 화차는 군관이었던 망암 변이중이 개발한 것으로 행주산성에 300여대가 있었는데, 3 방향으로 총열이
나와 있었으며, 일본군의 조총탄이 뚫지 못하도록 외곽 나무의 두께는 6cm나 되었다.
변이중 화차의 뒷 부분 화차 안에는 2명의 병사가 들어가 총열에 화약과 탄을 장착하고 발사하였는데 화차의 무게는 1톤이나 되었다.
또한 화차는 내부에 바퀴가 달려있어서 필요한 장소로 이동을 할수 있었다.
변이중 화차병의 탄 장착 모습 그런데 변이중 화차의 위력은 동시에 24,000 발의 탄을 발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최대 사거리는 500~600m
정도이고, 인명 살상용 거리는 150~200m 정도 였다고 한다. 화차병은 화차 밖을 살필수 있는 탐지 구멍을 통해
일본군의 접근 위치를 확인하고 탄을 발사할 수 있었다. 이것은 당시 세계 최초의 장갑형 탱크라 할수 있겠다.
1차 세계대전 당시의 세계최초 탱크 변이중 화차의 위력은 대단해서 근접한 적들에게 상당한 피해를 주었다. 일본군이 주력으로 사용하던 조총의
탄환이 화차의 두터운 벽을 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지상군에게는 현대의 탱크와 같은 존재였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는 클레이모어가 있었다.
여러분도 잘아시는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은 조선 해군의 13척 배로 일본 해군 130~200 여척의 배를 완파한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전투입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은 아주 절박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파직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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