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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대 한민족은 거인들의 나라였다.
    초고대 문명 2019. 6. 25.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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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 벽화 무용총의 접객도
    고구려 벽화 무용총의 접객도

    고구려 벽화인데 음식을 나르는 사람들과 의자에 앉아서 식사를 하려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러한 형태의 그림은

    이집트 벽화에도 많이 나오는 모습들이다. 아래글은 삼국유사에 기록된 내용중 식사량에 관한 것이다.

     

    삼국유사

    왕은 하루에 드시길  3말과  9마리를 잡수셨는데, 경신년에 백제를 멸망시킨 뒤에는 점심은 그만두고 아침

    과 저녁만 하였다. 그래도 계산하여 보면 하루에 쌀이 6말, 술이 6말, 그리고 꿩이 10마리였다. 성 안의 시장

    물가는 베 1필에 가 30석 또는 50석이었으니 백성들은 성군의 시대라고 말하였다.

    - 삼국유사

     

    삼국사기

    다음은 삼국사기에 실린 내용인데 신라의 서쪽에 거인들이 살고 있었다는 기록이다. 

    신당서(新書)에 또한 이르기를, "동쪽으로 장인(長人)을 막고 있는데, 장인이란 것들은 키가 3장인 사람으로,

    톱날같은 이빨에 갈고리 손톱으로 사람을 잡아서 먹었다. 신라는 항상 노를 쏘는 군사(弩士) 수 천명을 두어

    이를 지키게 하였다."고 하였다. 이는 모두 전해지는 소문이되 실제적인 기록은 아니다. 

    - 삼국사기 권34 잡지3 지리지1 신라

     

    신라는 (중략) 동쪽으로 장인을 막는다. (중략) 장인이란 것들은 키가 3장인 인류(人類)로, 톱날같은 이빨에

    갈고리 손톱이며, 검은 털이 몸을 덮고 있다. 불로 음식을 익혀먹지 않고, 금수(禽獸)를 씹어먹는데, 혹은

    사람을 잡아서 먹기도 한다. 부인을 얻으면 의복(衣服)을 짓게 한다. 그 나라(신라)는 산이 수십리나 이어져

    있는데, 골짜기가 있어 철합(鐵闔)으로써 막고는 관문(關門)이라 부른다. 신라는 항상 노를 쏘는 군사(弩士)

    수천명을 두어 이를 막게 한다.

    - 신당서 신라전

     

    태평광기

    신라국은 동남으로는 일본과 더불어 이웃하고, 동쪽으로는 장인국과 접한다. 장인들은 몸이 3장이며,

    톱날같은 이빨에 갈고리 손톱인데,불로 음식을 익혀 먹지 않고 금수를 쫓아 이를 먹는다. 때로는 또한

    사람도 먹는다. 그 몸은 벌거벗고 있으며, 검은 털이 이를 덮고 있다. 그 경한(境限)은 산이 수십리나

    줄지어 있으니, 가운데에 산골짜기가 있는데, 이를 이르러 철관(鐵關)이라 한다.

    (신라는) 항상 궁노수(弓弩) 수천명으로 하여금 이를 지키게 하니 (장인들이) 말미암아 넘어오지 못한다. 

    -태평광기 권481 만이2 신라

     

     

    태조 때, 유리하는 백성들이 그 섬(우산국)으로 도망하여 들어가는 자가 심히 많다함을 듣고, 다시 삼척사람 

    김인우를 명하여 안무사를 삼아서 사람들을 쇄출하여 그 땅을 비우게 하였는데, 인우가 말하기를, "땅이 비옥

    하고 대나무의 크기가 기둥 같으며, 쥐는 크기가 고양이 같고, 복숭아씨가 되(부피로 하면 약1.8 리터 정도)처럼 

    큰데, 모든 물건이 이와 같다"하였다.
    - 세종실록지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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