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는 쇄빙선이 있었다초고대 문명 2019. 8. 9. 09:00반응형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국 각지의 농민들은 농토를 버리고 피난을 갔으며, 버려진 논과 밭에 심겨진 작물들은
말라서 죽었다. 길고긴 피난행열이 이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어가고 있었다.
조선의 물자 수송선인 조운선 조선은 급박한 전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명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는데,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전란으로
국토가 피폐된 조선은 명나라 구원병에게 지원할 양식이 없었다. 당장 조선인이 먹을 양식조차 없었던 상황
이었기 때문에 명나라에 군량미까지 같이 요청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명나라는 구원병 48,000명에 군량미
100만 석을 보내어 주었다.
군량미 100만 석 그런데, 명나라는 군량미 100만 석을 지금의 평안북도 선천과 철산에다 풀어 놓았다. 이 군량미는 도성인
한양의 용산까지 운반을 해야하는데, 이미 늦가을로 접어들 무렵이었다. 조금만 지체하면 바람이 거세지고
파도가 높아져 바닷길이 막힐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100만 석이나 되는 군량미를 육로로 운송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얼어 붙어 있는 한강 당시 운송에 대한 책임을 조선에게 맡긴 명나라 때문에 조선의 조정은 걱정이 태산이었다. 이때 선조는
수송작전을 지휘할 지휘관에 형조참판을 지냈던 유근에게 맡긴다. 이 수송작전은 아주 막중한 임무였다.
곧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유근은 수송선을 개조하는 작업을 지시한다. 수송선의 배 앞머리에 두꺼운
판들을 덧붙여 만들라 지시한다. 주변 사람들은 배의 움직임이 둔해져서 운항이 어렵다며 반대했지만,
유근은 작업을 강행한다.
군량미 수송작전을 지휘한 유근 드디어 겨울이 되어 한강은 얼어 붙었고 수송작전에 동원된 조선의 수송선은 총 50 여척이 동원 되었다. 이때
얼어붙은 한강의 얼음이 배와 부딪치며 갈라지고 있었고, 수송선들은 갈라진 얼음을 통과해 나갈수 있었다.
모두가 환호했다. 결국 유근은 수송작전을 무사히 마칠수 있었으며 도성에 있는 군과 민간인들에게 군량미를
공급할 수 있었다.
얼음을 깨고 항해하는 쇄빙선 당시에 시도 되었던 얼음을 깨며 배를 이동시키는 개념은 오늘날 쇄빙선의 원리와 같다고 할수 있습니다.
만약 유근이 수송작전을 완료하지 못했다면 오늘의 우리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임진왜란 당시 원숭이 부대가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는 명나라의 구원병들이 들어왔는데, 명나라 이외에도 조선을 돕기 위해 참전한 다른 나라의 부대들도 있었다. 당시 명나라는 조선을 돕기위해 연합군을 형성해 부대를 파견하였는데, 기록에..
porori7.tistory.com
반응형'초고대 문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대 이집트는 거인들의 나라였다. (7) 2019.11.16 임진왜란 당시 원숭이 부대가 있었다 (0) 2019.08.10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는 화학무기가 있었다. (0) 2019.08.08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는 클레이모어가 있었다. (0) 2019.08.07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는 탱크가 있었다. (0) 2019.08.06